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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탄자니아 여행 - 드디어 세렝게티

by a trip to the moon 2020. 9. 13.

세렝게티까지 갈 길이 멀기에 새벽 일찍 일어났다. 레이크 만야라에 위치한 우리가 묵은 롯지에서 세렝게티 국립공원까지는 다섯 시간을 달려야 한다. 오늘은 쉬지 않고 세렝게티까지 달려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고 오후에 게임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다. 

 

탄자니아에 도착한 날부터 계속 날씨가 흐렸는데 이 날 역시 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영화 라이온킹에 나온 것처럼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을 상상했던 나로서는 조금 실망하고 있던 차였다. 게다가 나는 매우 더운 날씨를 좋아하기에 더더욱. 대니스는 사파리 투어를 진행하는 반경이 워낙 넓다 보니 세렝게티는 이곳과 달리 날씨가 좋을 수도 있다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실제로 여행 내내 우리가 가는 지역마다 비 예보가 있었는데 하루 종일 비만 내린 적은 없다. 장거리를 이동하다 보면 날씨가 바뀌기도 하고, 한 공간에서도 시시각각 날씨가 바뀌었다.)

 

 

 

 

오후 1시, 한참을 달려 세렝게티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긴 여정이었지만 심심하지 않았다. 대니스와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고, 탄자니아 군부대도 지나치고, UN 건물도 봤다. 대니스와는 서로의 직업에 대한 얘기를 한참 했다. 나와 남편은 사파리 가이드라는 직업이 대단하고 생소해서 자꾸 질문을 했는데, 대니스도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상당히 궁금해했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외국 문화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고 했다. 이렇게 서로의 얘기를 나누다가 알게 된 신기한 점은 탄자니아 사파리 가이드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 과정이 개설된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상당한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라 사파리 가이드가 되려면 해당 학과를 나와야 하고 시험도 봐야 한다고 했다. 투어객이 무엇을 물어봐도 모르는 것이 없도록 온갖 동물과 식물에 대해 심도 있게 공부한다고. 대니스 말로는 방대한 공부량에 치여 대학 재학 중에 가이드가 되기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또 바로 실무에 투입되는 것이 아니고 전날 레이크 만야라에서 만났던 어린 가이드처럼 수습 기간도 거쳐야 한다. 거기다 이정표도 없고 포장도로도 없는 공원을 달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운전 실력과 노련함도 필요하다. 공원의 지리를 빠삭하게 외워야 하는 건 기본이다.

 

 

 

사파리 투어를 하다보면 가이드들이 오다가다 마주치는 다른 가이드들과 상당히 친밀하게 대화하고 장난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가이드가 되기 위해 힘든 과정을 함께 거친 대학 동기, 선후배들이라 더 가깝다고 한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접점이 없더라도 투어를 하다 보면 마주치는 일이 너무 많아서 모르던 사람까지 다 친해진다고.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동물, 식물이 많은데 투어객이 모르는 걸 물어보면 어떻게 하냐고 대니스에게 물었다. 대니스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라고 답했다. 자신은 단순히 가이드 일이 좋아서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동물을 사랑해서 한다고 했다. 그런 만큼 관심도 많고 항상 공부를 하고 있다고. 일반 관광객이 사파리 가이드가 알고 있는 지식수준을 넘어서는 질문을 하는 일은 잘 없다고 했다.

 

 

공원 초입에서 만난 새끼 얼룩말

 

 

공원 입구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는 와중에 거짓말 같이 날씨가 맑게 개었다. 내가 바라던 태양 빛이 내리쬐는 날씨. 서둘러 식기를 정리하고 들뜬 마음을 안은 채 공원 안쪽으로 출발했다. 

 

 

세렝게티는 마사이어로 '끝없는 초원'이라는 뜻.

아프리카에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초식 동물이 이 곳에 살고 있으며

백만 마리가 넘는 누떼의 대이동이 잘 알려져 있다.

 

 

날씨가 좋아져서 이 날은 자동차 뚜껑도 열었다. 사파리 차량의 포인트. 지붕을 위로 들고 동물을 더 자세히, 편하게 볼 수 있다.

 

 

 

 

시원하게 달리며 가젤과 얼룩말 무리를 만났다. 전날 한 마리씩 떨어져 있는 동물들만 보다가 떼 지어 있는 동물들을 보니 색다른 장관이었다. 사자도 봤다.

 

 

 

 

나는 빅 5(사자, 코끼리, 버팔로, 표범, 코뿔소) 중에 표범이 가장 보고 싶었는데, 표범만큼은 쉽사리 눈에 띄질 않았다. 대니스가 말하길, 표범은 개체수가 많이 줄었고 무리 활동을 하는 동물이 아니라 못 보고 가는 경우도 꽤 많으니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한참을 세렝게티 초원을 달리며 구경하던 와중에 갑자기 대니스가 무전을 하더니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울퉁불퉁한 길 탓에 차는 덜컹덜컹 흔들리고 엉덩방아를 수십 번은 찧었다. 급하게 가는 걸 보니 대단한 동물이 나온 것 같은데.. 표범이 아닐까 내심 기대했다. 도착한 곳에서 대니스가 가리키는 나무를 보니 표범이 보였다. 정말 아름답고 우아한 자세의 표범. 햇빛을 피해 아카시아 나무 위에 걸터앉아 있는 표범의 모습에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보니 많은 사파리 차량이 이 장소에 모여들었다.

 

 

 

 

표범을 보고 돌아서며 대니스가 말하길 사파리 투어는 뭔가를 너무 기대하면 꼭 그게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내게 아까와 같은 매정한 말을 했다고. 그리고 자기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와 남편에게 꼭 표범을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사방팔방을 뒤졌다고 했다. 나의 낮춰진 기대치와 대니스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우리는 이후로도 두 마리의 표범을 더 보았다. 

 

도중에 진흙에 빠진 차 때문에 20여분 정도를 움직이지 못하고 한 곳에 서있었는데 지나가는 이들이 모두 멈춰 도와주는 모습이 훈훈했다. 진흙에 차를 빠트린 사람은 전문 가이드가 아니고 일반 관광객이었는데 비포장 도로 운전이 서툴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국립공원에 전문 가이드 없이 개인적으로 방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아는 사람이 많은데 대니스가 말하길 필요한 서류만 제출하면 일반인도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길을 찾기가 어렵고 길도 험해서 자신은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니스에게 서로 도와주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고 했더니 그가 '사파리에서 문제가 생긴 차량을 보면 꼭 도와줘야 한다'라고 말한다. 투어 동선이 겹쳐서 또 만나게 될 가능성이 클뿐더러 가이드끼리는 차량을 다 기억하기 때문에 안 도와주고 지나갔다간 나중에 우리 차에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못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카르마인가 보다. 하하.

 

 

 

 

세렝게티에서의 첫 게임 드라이브를 마치고 롯지로 향하는 길.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을 쌩쌩 달리는데 날씨는 너무 좋고, 바람은 시원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행복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말도 안 되게 넓은 대자연을 달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두 발로 직접 달리는 건 아니지만) 세렝게티에 방문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타조와 함께 달릴 수 있는 이곳은 세렝게티
어디선가 참기 힘든 오물 냄새가 난다면 근처에 하마가 있다는 의미
사자 모양의 구름 - 라이온킹에서 심바가 무파사와 구름을 보며 놀던 장면이 생각난다

 


 

 

쿠부쿠부 롯지 Kubukubu Lodge

쿠부쿠부 롯지는 전 객실이 세렝게티 초원 뷰 인데다 인피니티 풀이 있어 유명한 롯지이다. 세렝게티 초원을 바라보며 수영을 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선택한 숙소. 객실은 넓고 깨끗했다. 초원 방향으로 테라스가 있어서 쉬기에도 좋았다. 테라스에서는 임팔라와 가젤이 초원을 뛰노는 모습이 맨눈으로 다 보인다. 어두워지면 객실 바로 앞까지 올라온다고 했다. 국립공원 내의 모든 숙소가 마찬가지지만 이곳 역시 동물들이 가까이 오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해가 진 후에 투숙객끼리 이동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에 가는 등 움직일 일이 생기면 리셉션 데스크에 연락해 동행인을 요청해야 하는데, 마사이 족 전통 옷을 입은 마사이 직원들이 주로 동행을 해준다. 

 

쿠부쿠부 롯지 Kubukubu Lodge - 특이하게도 객실 샤워실이 야외에 있다

 

식사 전, 수영을 하러 나왔는데 오전까지 비가 와서 그랬는지 날씨가 너무 추워서 발만 담그려다가 언제 또 여길 와보겠냐는 생각에 물에 뛰어들었다. 수영을 하는 나와 남편을 보며 한 노부부가 이렇게 추운데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는데 상당히 민망했다.

 

 

 

 

저녁 식사는 코스로 제공되는데 그것과 별개로 다양한 사이드 디쉬를 내어줬다. 음식 가짓수가 많아서 좋았다. 아주 맛있지는 않았지만 선택지가 많으니 그래도 전날 저녁보다 맛있게 먹었다.

 

 

 

 

이 날은 식사 후 숙소에 돌아와 준비되어 있던 와인을 마시며 좀 놀다 자려고.. 하기는커녕 돌아오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남편은 밤새 동물소리가 너무 가까이에서 들리는 게 무서워서 잠을 설쳤는데 내가 옆에서 코를 엄청나게 골았단다. 미안하지만 남은 일정을 다 소화하려면 코를 골든 이를 갈든 숙면을 취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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